“달빛에 물샐 리가 없을지라도…”
시상수상詩想隨想 -35
건강검진을 받으러가니
우울증 자가진단표를 작성하란다
드물게 ․ 가끔 ․ 자주 ․ 대부분 항목마다
점수가 매겨져 있다, 0점에서 3점까지
“마음이 아파요”
모조리 3점뿐이다
나는 매일 순간마다 개미로 기어가는데
조주 선사께 갔더라면 매질이나 당했을 터인데
아비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샤님이 가시를, 가시를 샤님이*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람이 사람을, 사람이 람을
침실 거실에서, 골목 측간에서, 산과 들에서…
거시기하게 찢어지는 거시기한 핏빛거리
그래도, 달빛에 물이 샌다니
땜질해주는 이웃집 설비사가 있긴 있다
한 일주일 자실 약을 처방할 터이니
안 나으면 다시 오시란다
*샤님: 남편의 옛말 *가시: 아내의 옛말
-졸시「물 새는 달빛 -어느 해, 한가위풍경」전문
조주 선사께 한 행자가 하소연했다. “마음이 혼란하여 수행에 정진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그 마음을 내놓아 보아라. 그 마음을 혼내주겠다.” 행자는 물론 그 마음을 내놓을 수도 없었을 터이고, 선사께서도 혼내줄 마음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상 마음은 그냥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데 정작 아픈 것은 다른 것일 터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아프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듣는다. 과연 아픈 마음은 무엇일까?
근래 정신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드디어 ‘정신건강 서비스 확대’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한때는 정신병원에 가는 것을 남에게 숨겨야 하는 고질병으로 여겼으나,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법한 마음의 상처-정신의 혼란한 상태를 방치하지 말고 그때그때 적절한 처치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방치할 때 개인의 아픔이 사회적인 아픔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들이 요즈음 빈발하고 있다.
한가위가 낼 모레다. 요즘 시대상황을 한 마디로 말하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라고 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시대의 걸출한 논객이라는 분이 공영방송 KBS에 나와서 한 말이다. 그 말이 내 말과 같아서 크게 공감하였다. 각자도생이 무엇인가? 제각기 살아갈 방도를 꾀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천지 믿을 놈은 나 자신뿐이라는 뜻이다. 죽든 살든 저를 책임질 사람은 저 자신뿐이라는 뜻이다. 그 말뜻을 몰라서 자꾸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말뜻이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말이어서 그런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정글논리-밀림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단 말인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보편적 복지네, 선별복지네 서로의 주장을 놓고 아름다운(?) 논쟁을 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럴 때 코로나19로 모든 민생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간다며 국민 저마다의 통장에 느닷없는 용돈(?)을 채워주지 않았던가? 살다보니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아무데나 쓰라며[외식을 하던, 옷가지를 사던, 살림살이를 구입하든…] 용채를 안겨주다니? 입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참으로 신기했고, 기분이 묘하였다. 그때 참으로 ‘국민’된 보람이랄까, 삶이 재미있다는 복지국가의 풍경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그런 풍요와 성취로 인하여 맛보았던 복지국가의 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각자도생이라니! 참으로 기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공위성을 타고 마치 다른 별나라에 불시착한 황당함이 이럴까? 실제적 경제상황이나 개인별 살림살이의 수준을 불문하고 이런 낭패감이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팽배해 있다. 그래서 꿈에서 깬 듯 생활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해야 하며, 백면서생의 주제에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기건강검진이 아니라도 이런 내 정신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우울증자가진단표’를 보니 가관이다. 식욕이 없거나, 일이 힘겹다고 느끼거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거나,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슬픔이 밀려온다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들어 한다, 등등 스무 남은 항목마다 정도에 따라 0점~3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그 결과 20점미만은 정상범위에, 40점까지는 위험군에, 41점부터는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진단을 내린다.
나의 경우를 적용해 본다. ‘아픈’ 사건-사고를 목격하고 전해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뿐인가? 책을 읽으며 감동에 젖어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영화를 볼 때 슬픈 장면에서 삐질 거리기도 하며,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은 걷잡을 수 없게 우울하기도 하며,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를 보면서는 날마다 분노하고 절망하며 말세적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다면 나는 분명히 ‘우울증 고위험군’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정작 마음이 아니라 그런 현실-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으며, 여기고 있는 것과는 다른 상태로 전개되는 현상들에 대한 언짢은 심경이자, 불편한 내색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현실이, 내가 당하고 있는 삶의 진실이 어긋나고 비틀리고 물구나무 선 삶이 아픈 것이다.
달빛에 물이 샐 리도 없겠지만, 그런 달빛에 땜질하겠다고 나선다면, 배 아프다는데 두통치료제를 처방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현실을 고치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없는 마음이 아프게 될 것이다. 달빛에는 늘 물이 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