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 앞을 보고 가는 정치

2023-07-23     김규원
김규원/편집고문

23일은 대서(大暑), 일년 중 가장 더운 시기를 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장마가 이어지고 있어서 진짜 더위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듯하다. 바람도 불고 그늘에서는 견딜만하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건 날씨 때문이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나라 정치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는가 싶던 마당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어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세계 경제가 호황기를 끝내고 다시 침체기에 들어가는 시기다. 미국발 자국 위주 정책이 각국에 파급효과로 나타나 팽팽한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물가는 외식 값에서 출발하여 모든 가격이 올랐다. 물가의 기준이 되는 전기료가 몇 번이고 올랐고 아직도 두어 차례 더 올라야 한다니 서민들은 이 더위에도 에어컨조차 쉽게 틀지 못한 채 잠을 설친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내놓아 국민적 기대를 끌어모아 당선한 화두는 공정과 상식이었다.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약속으로 윤석열 후보는 48.56%를 득표하여 당선되었다.

작년 510일 윤 대통령이 취임한 뒤 23일까지 12개월 14일이 지나고 있지만, 그가 취임하면서 약속한 공정과 상식, 그리고 몇 번이고 강조한 자유는 어디에 꽁꽁 감추었는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오래전에 보았던 장면들이 TV 속에서, 길거리에서 자주 눈에 띈다. 전경을 가득 실은 버스가 집회 현장을 가로막듯이 서 있던 그 광경과 다르지 않은 경찰 버스가 집회 현장을 지킨다. 곤봉 든 경찰이 시위주동자와 충돌하여 연행하는 광경도 보였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시위 현장의 경찰 버스와 곤봉을 보는 마음은 지난 시절 기억하기 싫었던 장면들을 불러들인다. 이런 것이 자유를 선택한 결과라니 어처구니없어하는 국민은 아무래도 속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취임 초부터 해외만 나가면 문제가 불거지던 관행은 아직도 이어져 구설수를 만들고 있다. 그런 일을 변호하겠다고 나선 여당의 발림소리는 낯간지러워 듣기 민망한 수준이다. 대통령의 모든 뒷바라지를 책임진 대통령실의 해석이나 해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국정 2년 차, 이제는 지난 정권을 탓하는 일도 신물이 날만 한데 뭔가 잘못된 일만 보면 지난 정권 탓이다. 심지어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나는 일에도 지난 정권 탓이라는 인사도 있었다. 잘되는 건 내 탓이고 잘못되는 모든 일은 지난 정권 탓으로 돌리는 화법도 이젠 그만두자.

아직도 남 탓, 내 덕을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묵은 수법에 국민은 전혀 속지 않는다. 정치권 보다 100배는 현명한 국민이다. 지난 대선에서 지루한 코스프레 정치에 신물나서 바꿔보겠다고 선택한 이들에게 자꾸만 후회하는 마음을 키우는 정치도 그만하자.

12개월 동안 우리 정치는 후퇴만 거듭해왔다. 묵은 것을 들추어 이렇게 저렇게 지난 정권이 잘못했었노라고 보여주면 새 정부에 신뢰가 커질 줄 알지만, 효과 없는 짓이다. 여태 부정적 여론이 60%에 머물어 있는 수치를 보면 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가 지난주 대비 4.2% 포인트(p) 하락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35.6%를 기록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4.7%p 상승해 62.0%로 나타났다. CBS노컷뉴스가 여론조사 업체 알앤서치에 의뢰해 23일 발표한 내용이다.

지금 권력 언저리에서 나름 뭔가를 누리는 사람들과 찐 보수층, 독재 시대의 향수에 젖은 노인들이 그나마 30% 중반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다고 본다. 집권 초기에 20%대를 넘나들던 시기보다는 높지만,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국정에 추동력을 얻기 어렵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에 따라 국민은 정치에 짜증을 내기조차 귀찮다. 당장 사는 일이 다급한 이들은 여론 조사에 응답조차 할 여유가 없다. 바꿔 말하면 지금 드러나는 여론 조사 수치는 실제 국민 여론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서민 경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물가는 6%가 올라 견디기 어렵다. 방산 수출이 크게 늘고 일부 품목이 호황을 누리는 덕분에 무역수지도 계속 흑자로 나타나지만, 그 효과가 일반 서민 경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은 말로는 국민만 보고 간다라지만, 실제는 오로지 자신이 생각대로 국정을 이끌고 있다. 국민의 뜻과는 달리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도 풀어줄 가능성이 짙다.

국민 대부분이 반대를 외쳐도 들은 척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반대 의사를 모른체하고 일본 편에서는 이유를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번 수해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즉시 귀국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돌아와도 달라질 것이 없으므로 우크라이나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긴급 국제회의를 하다가도 자국에 수해나 큰 사건이 터지면 즉시 귀국해 현장을 지휘했다.

산사태와 홍수, 지하차도에서 인명이 희생되는 긴박한 순간에 돌아가도 달라질 것이 없다.’라는 해괴한 해명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게 국민만 보고 가는 지도자의 태도인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하는 정치를 독재라고 칭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방산기술로 세계의 무기고 역할이 가능하고 반도체와 신소재 기술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어 제대로 지원하고 관리하면 세계의 중심 국가로 확실하게 일어설 수 있다. 제발 이제는 과거 정치는 잊고 앞을 보고 가는 정치로 돌아서주기 바란다.

세계 경제가 정체하여 머뭇거리는 이 시기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거리들이 밀려들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 위해서는 온 나라가 한 몸처럼 되어야 한다. 국민과 함께 미래를 위해 뛰는 정부로 달라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