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대선과 통합의 길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98일 남았는데 향방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나름 지지하는 후보에 유리한 기사를 만들어(?) 뿌리는 데 열심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서로 김칫국을 빨아가며 줄 잡기와 줄 세우기, 말 꼬리 잡기 놀이에 여념이 없다.
역대 대선 중 지금처럼 이상하고 애매한 적은 없었다. 여론조사가 선거의 흐름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해 결국 특정인사가 정치입문 3개월만에 제1야당을 점령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인사들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는 건 기본이고 자존과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과연 그런 자들이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무슨 짓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이번 대선의 특징은 양대 정당의 유력 후보들이 비호감 인물이어서 각 정당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누구도 결정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자 모두 맘에 들지 않지만, 그나마 조금은 희망이 있어 보이는 인물에게 표를 주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1/4 유권자들은 부동층으로 머물러 있다.
대선판 초기에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잘못을 질타하는 목소리와 함께 조건없이 국민의힘으로 민심이 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물론 윤석열 후보의 행보가 과거 정치로 회귀하는 양상을 드러내자 의심과 불안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햇볕을 많이 받아 웃자란 식물이 기온 변화를 견디기 어렵듯 여론조사가 만들어 낸 후보의 한계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권을 손에 쥔 듯이 자신만만한 후보와 그 측근들이 당 조직 자체를 깔아뭉개는 행태를 보이면서 당의 내분이 심화되고 있다.
아마도 국민의힘의 내분은 민주당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후보는 지지자들을 만나다 보면 그동안 꾸던 꿈이 현실로 다가선 듯 착각하게 된다. 심지어 불리한 선거인데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게 된다. 선거라는 마약에 중독되면 결과가 현실로 드러난 뒤에도 믿지 못하고 망발을 거듭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보였던 선거 불복이 그 실례다.
어쩌면 윤석열 후보는 이미 심각한 중독에 빠져,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에 단호하게 선을 그은 일이나, 이준석 당 대표를 패스하고 임의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회복 불능의 중독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런 성향은 특히 꽃길만 걸어온 인물들에게 심하게 나타난다. 격랑의 세파를 겪어보지 않고 늘 좋은 소리, 아부하는 소리만 들어온 사람에게 지지자들의 환호가 승리를 확신하는 소리로 들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캠프에 권력을 좇아 모여든 불나방들이 가득한 터라 진실을 전하는 측근이 없으니 더욱 환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점차 독불장군으로 변하는 상태를 보며 국민은 어떤 판단을 할까. 과연 그가 대권을 쥐었을 때, 정치권의 혼란을 생각하면 솔직히 두려움이 앞선다.
검찰이라는 특수한 권력 조직에서 살아온 그가 선거 상황을 지나오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아왔고 숱한 말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는 대권이라는 환상에 빠져 시간만 지나면 대권은 내 것이라는 마음으로 견디어 왔을 것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초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 수치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아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 지지도, 그 정당 지지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후보의 지지도는 무엇을 반증하고 있을까.
자당의 경선후보가 발굴한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은 실로 엄청난 풍파를 일으켰다. 하지만 2015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새누리당에 둘러싸여 운신조차 어려웠던 점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여론이 호전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윤석열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 등 실언에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민주당은 송영길 당 대표가 아예 당 조직 자체를 이재명 후보에게 일임하고 후방지원을 자임하고 나섰다. 대선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이낙연 전 총리가 공동선대위원장에 이름만 올렸을 뿐, 이재명 후보를 적극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의 대통합을 주장하며 당을 떠난 정대철, 천정배, 정동영 등을 포함한 진보진영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통합형 민주당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선 기득권을 지키려는 듯, 반발이 심각한 수준이다.
전북지역 또한 전 민주당 인사들이 복당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명분은 양지만 쫓아다니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게 결코 민주당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근본적 이유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들을 받아들이면 지방선거 공천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신들의 몫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위기의식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을 내주기 싫다는 것이다.
여태 당을 지키느라 고생했는데 자신의 이익을 좇아 나갔던 사람들을 불러들여 그 이익을 나눠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소탐대실이다. 그들은 사소한 내 욕심(개인의 생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 거대한 대선판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차후의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그들에게 대선 성패는 무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작금의 민주당은 어떤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결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 민주당 인사들 뿐만 아니라 찐 보수 세력을 제외한 중도 세력까지 끌어안을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이번 선거에서는 필패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