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公僕)을 고르는 눈
월요일 아침에
가을인데 번쩍번쩍하더니 천둥이 울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아침이다. 계절의 특색이 변하고 기온이 올라 곳곳에서 산불이 나고 물난리가 나서 사람이 죽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달째 산불이 잡히지 않아 서울의 5배 면적의 임야가 소실되고 마을이 통째로 불타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계절의 순환이 달라지는 건 그동안 인류가 누리던 자연의 혜택이 변하고 있음을 말한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좋으면 되고 나만 잘 먹고 나만 편하겠다는 욕심이 상도(常道)를 무너뜨린 결과다. 경쟁의식이 지나친 나머지 상생(相生)을 거부하고 나만 살겠다는 욕심이 만연하는 세상의 단면이고 자연이 내리는 벌(罰)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상반기를 앞두고 크고 작은 머슴이 되어보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이 차고 넘친다. 저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하지만, 하는 꼬락서니는 ‘욕심으로 제정신을 잃은 실혼인’을 보는 듯하다.
대통령이라는 상머슴 자리를 노리는 두 거대 정당에서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이 넘친다. 양 정당에서만 19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하고 10월에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정의당을 비롯한 정당을 다 합하면 거의 30명 정도에 이를 것이다.
절망하는 건 당선 가능성이 큰 양대 정당의 후보들이 경선 과정에서 보여주는 한심한 작태 때문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싸우듯 치졸한 폭로와 물고 늘어지기를 일삼는 네거티브 경선에 대다수 국민은 이미 염증을 느껴 관심조차 꺼버렸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거 캠프에서는 아마 지금도 해괴한 네거티브 공격을 발굴하고 각색하느라 바쁠 것이다.
좋은 정책을 내놓고 견주면서 실현 가능성을 따지고 그 내용을 국민이 판단하게 하는 바른 선거는 오래전에 물 건너갔다. 오로지 너 죽고 나 살자는 동물적 경쟁에 국민은 분노한다. 그런 자들 가운데 한 명을 골라야 하는 참혹한 현실에 실망하며 탄식한다.
야권에서는 사정기관 출신 정치 신인들이 곧바로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서서 국민 생활이나 사회통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망발을 일삼아 실망을 안기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함량 미달 인물들이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중요한 오늘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세계 경제가 허둥대는 가운데서 새로운 형태의 소비성향이 등장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지원이 요긴하게 작용해야 이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한눈을 팔지 않고 정확하게 족집게 정책을 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고 경제가 안정될 수 있다. 그러한 판단을 적절하게 내놓을 수 있는 능력자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말이다. 누가 밉다고 배차기로 표를 주었다간 나도 나라도 망한다.
국민이 자신의 일시적 감정 쏠림으로 표를 잘못 주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나락(奈落)으로 곤두박질하게 될 것이다. 인기에 영합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이 위기를 넘겠다는 생각과 재치 있고 과단성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
대선만 아니라 지방 선거도 대단히 중요하다. 광역단체장과 기초 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지방 선거에서도 이미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단체장의 역량에 따라 지역이 새로워질 수 있고 정체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최근에 실감했다.
급변하는 과학기술과 재앙에 가까운 자연 파괴에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묵은 전통이나 헤집는 행정이 이어오면서 우리 전북은 점점 더 낙후라는 굴레를 벗을 가망이 없어졌다. 다른 지역에 가보면 하루가 다른데 우리 전북은 어디를 가도 그저 그대로 과거에 매달려 산다.
단체장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지난날의 관찰사, 부사, 현감 따위의 관직에 있다고 생각한다. 걸핏하면 지시를 내리고 명령체계를 세우려 든다. 자신의 말이 지상명령이라도 되는 듯이 지키기를 원하고 잘못된 것을 알아도 고치려 들지 않는다.
권위주의에 빠져있고 스스로 ‘목민관’이라는 허황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지난날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벼슬아치이고 백성의 어버이라고 인식하던 황당한 단체장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국민이 표를 주어 일하라고 맡긴 자리에서 외려 국민을 눈 아래에 두고 받들기를 바라는 인물은 이 시대에는 공복(公僕)될 자격이 없다.
그들은 임금이 주는 벼슬을 받아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관리가 아니다. 자신에게 표를 주어 일을 하라고 맡긴 이들의 뜻을 살피고 그 뜻에 따라 몸 바쳐 일하는 머슴이다. 개인의 머슴이 아닌 공복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자들은 선거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표를 가진 이들은 그런 자들에게 절대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주인인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드는 자, 지시하고 명령하려는 자, 스스로 대단한 존재인 단체장이라고 아는 자, 권위주의에 빠진 자들을 경계하고 선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선전하며 자신이 한 일을 치적(治積)이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인물에게 다시는 표를 주지 않아야 나와 이웃, 지역이 발전한다.
오랜 공무원 생활을 통해 얻은 요령으로 공무원들을 다스리고 국민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가며 요령을 피우는 능구렁이 단체장도 이제는 갈아치워야 한다. 그들의 오랜 경험과 요령은 자신을 위해서 쓰일 뿐, 진정 지역과 주민을 위해 쓸 바탕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묵은 경험이 별로 쓰임새가 없는 건 당연하다.
생각이 젊고 변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자보다 함께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는 이웃 같은 사람, 정당이 있건 없건 오로지 개인의 능력을 보고, 참신한 공약을 살펴보아 정직하고 속이지 않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 그럴듯한 경력보다는 인간 됨됨이를 보아 선택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