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정책이 없다
가마솥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힌다. 여기에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국민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오늘이다. 영업시간 제한, 4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 등 서민경제에 치명적인 조치가 잇따라 나와도 하루 확진자 기록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선거 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간다. 나라 권력의 머리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과 일선 자치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지방선거는 서울시장을 비롯한 전국 광역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을 뽑고 광역의원과 기초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국민 시선이 대통령 선거에 몰려있는 사이에 각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대선 후보들조차 진흙탕 싸움으로 온갖 추태를 보이고 있는데, 지방선거 입지자들이 조용하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우리 정치판은 여태껏 그렇게 서로 얼굴에 먹칠, 흙칠, 똥칠하는 짓이 정치의 정도라고 알았던 것 같다. 그 정치판에서 나온 사람들이 벌이는 지방선거판이니 과거와 크게 다를 수 없을 것이다.
가톨릭 서울 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은 권력 쟁취에만 몰입하지 말고 희생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라며 “세상은 못 박는 자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못 박히는 자가 구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자 선에 봉사하는 일이 돼야 한다”면서 “정치는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협치의 예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권력이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정치가 사람을 살게끔 도와주는 일을 해야지 권력 쟁취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라고 정치판을 걱정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는 폭력이다.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이끌어 집단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이 정치다. 힘을 얻어서 지배하고 내가 더 많이 차지하겠다는 욕심은 그저 동물적 본능일 뿐이다.
동물들은 젖을 떼는 무렵부터 무리의 서열을 정한다. 힘을 겨루어 가장 힘이 센 동물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 우두머리는 먹을 것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먹는다. 그가 다 먹고 나서야 아랫것들이 먹이를 먹을 수 있다. 먼저 많이 먹어 몸도 더 크고 힘도 센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강자는 더욱 강하게, 약한 자는 제대로 먹지 못해 비실거리며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 민주국가의 권력은 결코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라의 근본인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가 법에 따라 집단의 이익을 구하고 모든 국민이 편안한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게 정치다.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거나, 능력을 앞세우는 정치는 독재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오늘의 우리 정치를 보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입으로는 공정과 평등을 앞세우며 지역감정을 자극해 표를 얻겠다고 망발을 일삼는가 하면 어떻게든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일념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민주당 또한 대선후보 경선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유력 후보라는 사람들이 서로 물어뜯기에만 열중한다.
과연 그들 가운데 대통령으로 적임자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하는 말이나 행동이 유치하기 그지없다. 당내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를 선출해 그에게 힘을 밀어주어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 싸움으로 더럽고 추잡한 몰골이 되어 국민 앞에 나를 선택해달라고 나설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양상이다. 염수정 추기경의 말씀처럼 정치는 희생이다. 나를 바쳐서 국민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앉아 끝없이 낮아져야 하는 대통령 자리다.
그렇게 앉아도 자칫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거나, 권력 맛에 취해 발걸음이 흐트러지기 쉽다.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자가 그 자리에 앉으면 나라가 불안해지고 국민이 힘들게 된다. 우리 지난 역사에서 얼마든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모두 편안히 퇴임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자격 미달인 사람들이 너무 큰 의자에 앉았기 때문이다.
최근 본지 머리기사로 지방선거를 앞둔 지방 정가의 양상이 심각하다는 내용이 실렸다. 민주당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전북 지방선거판이 아직 선거 예비후보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물어뜯기와 할퀴기 양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는 기사였다.
지난 전북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14개 시군 중 3개 시군을 제외하고 나머지 11개 단체장을 싹쓸이했고 지방의회도 완전히 장악했다.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는 대선이 맞물린 상황이어서 민주당 바람이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정황을 파악한 지방선거 입지자들은 벌써부터 권리당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모아 입당 절차를 밟는가 하면, 상대방을 음해하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폭로와 비방을 일삼아 선거판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혼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기초 지방선거에 정당공천이라는 굴레를 씌워 지구당 위원장인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에 둔 악법이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할지 지금부터 걱정이다.
누구든 내가 어떤 일을 할지를 알려 공감을 얻기보다는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에 열중하는 동안 국민의 신뢰를 잃고 2020년 총선 결과에 널브러지던 자유한국당 꼴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극히 편파적인 여론조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 정치의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