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탱자씨

2021-06-06     전주일보

가시가 제 눈을 찔렀다
몸이 뜨거웠던 날
붉은 것은 
가시가 있는 줄 알았다

콧수염이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엉덩이가 탱탱한 탱자하나 따먹고 싶어 탱자나무 속으로 손을 뻗었다가 손가락을 찔렸다. 그때, 손가락 끝에 붉은 꽃을 피게 한 것은 가시었다. 왜, 있잖아? 아프다는 생각보다 먼저 속이 뜨끔할 때. 내 사랑도 그랬다. 결국, 순백의 탱자 꽃에게 마음을 주고 오랫동안 손가락을 동여매고 살아야 했다.

지금 그 손가락,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여전하지만
가슴은 노랗게 곪은 채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누구라도 감이 근접할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가을철이었다. 고향 마을 진철이 아제네 탱자나무에 탱자들이 노랗다. 울타리 전체가 한 폭의 풍경화다. 진철이 아제는 서리가 오기 전에 탱자를 땄다. 터질듯이 익은 탱자로 술을 담갔다. 먼지가 앉은 탱자를 물에 깨끗이 씻었다. 채반에 펴 마루 끝에 내놨다. 바람과 햇볕이 물기를 핥아갔다.

노란 탱자가 곱다. 술병에 담겨진 탱자는 술에 젖어 몸을 부풀렸다. 진철이 아제네 안방에 진열된 탱자 술은 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담았던 탱자 술들이다. 유리병 속의 탱자는 축구공만 하게 보였다. 뻥~차면 하늘에 걸린 태양이다.

지난봄이었다. 잎이 돋기 시작하는 탱자나무 성근 가지 사이로 무수한 가시들이 바늘 끝이 되어 금방이라도 찌를 것 같았다. 바람이 탱자나무 사이를 통과하는지 탱자나무 사이에서 참새 울음소리가 났다. 동네 꼬마들은 푸른 탱자를 따 구슬치기를 했다. 싫증이 나면 발로 밟아 터뜨렸다. 탱자의 살갗은 제 가시로 저를 찔러대고 할퀸 수많은 상처투성이다.

울퉁불퉁한 진초록 탱자는 지금도 가슴속에서 아슴아슴하다. 진철이 아제가 탱자 술에 얼큰해진 저녁 무렵은 붉었다. 내 유년의 울타리는 진철이 아제네 탱자나무였다. 지금까지 진철이 아제는 탱자나무에게 펌프질을 해대고 있다. 귤이 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