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포만(茁浦灣)을 되찾자(2)
지난주 '줄포만을 되찾자'는 필자의 글에 줄포 주민은 물론 출향 인사, 부안 군민들이 열화같은 호응을 보냈다. 지난날 곡창지대인 전북 서해안의 중심이었던 줄포가 최근들어 다시 지역의 중심으로 떠오를 기회가 왔다는 데에 많은 공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글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지난날의 증언과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을 말해주는 이들도 많았다. "어찌 이런 일은 빼먹었냐?’" 묻는 이도 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줄포를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 번 더 쓰라는 권유가 있어 속편을 쓰기로 했다.
지난 역사를 반추(反芻)하면서 다가오는 시대에 다시 서해안의 중심으로 다시 서는데 필요한 생각을 정리해보며 역사는 순환한다는 평범한 논리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80년 초반까지도 물산의 중심이었던 줄포가 이제는 서해안 여행의 중심으로,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시선을 끄는 지역이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새롭게 조성해 반듯하고 각진 도시의 정서보다 오래되어 묵은장(醬)처럼 볼수록 새로운 감회를 주는 줄포, 사람 냄새가 나는, 그리고 문화의 중심으로, 정주여건이 뛰어난 지역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거점이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위협을 겪으며 우리는 북적거리는 도시보다 한가로운 시골이 바이러스의 위협에서도 한결 안전하다는 것을 배웠다.
서해 3포 가운데 하나였던 줄포
줄포는 1875년 개항하던 당시 인천의 제물포와 전남의 영산포와 함께 서해안의 3대 포구였다. 특히 줄포는 칠산어장의 모항이면서 배후에 당시 모든 거래의 단위였던 쌀이 가장 많이 나오는 호남평야를 두고 있어서 전국의 돈이 몰려든 곳이었다.
줄포시장의 거래량이 부안시장의 6배에 달했다는 기록이 말해주듯, 줄포는 조기 파시와 함께 미곡의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었다. 당시 줄포에는 줄포, 수당, 난신, 대동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비롯해 줄포중학교와 성광중학교, 줄포수산고등학교가 있었다.
번성하는 어항이어서 그런지 유동 인구 또한 늘 넘쳐났다. 바닷물의 범람을 막는 제방이 축조된 뒤로 새롭게 조성된 항구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어선으로 가득 찼다. 현 부안수산업협동조합의 전신인 줄포어업조합을 비롯해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삼양사 도정공장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3개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신성관, 중앙관, 백번집 등 중화요리 전문점도 부지기수였다. 여기에 장날이 되면 동춘서커스단이 상주공연을 할 정도로 그야말로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구한말 전라관찰사였던,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이가 줄포에 토지를 소유했을 정도로 줄포는 잘 나갔다.
하지만 1980년초 항구에 토사가 쌓이면서 줄포는 항구기능을 상실했다. 결국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나둘 삶의 터전을 찾아 줄포를 떠났다. 그리고 줄포는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면 단위에서 20,000여명의 인구수를 자랑하던 줄포는 2020년 기준 3000여명에 불과한, 그야말로 초라한 촌으로 전락하며 긴 잠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사람들
서울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현실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아예 소멸을 걱정하고 있는 오늘이다. 하지만 줄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준비에 여념이 없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신념으로 지난날의 역사를 돌아보며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은 전국의 유명 테마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이미 120년 전에 조성된 살기 좋은 정주여건은 줄포면 소재지 인근의 마을은 물론, 이웃 보안과 진서, 고창의 흥덕, 정읍의 고부에서도 줄포로의 이주를 결심하거나 고민할 정도로 줄포의 정주환경(주거여건)이 주목되고 있다.
불과 15분 거리에 정읍고속철도역과 호남고속도로, 3분거리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위치하고 있다. 또 부안읍과 고창읍, 정읍시 또한 15분 이내에 오갈수 있을 정도로 사통팔달의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초중고는 물론 대형마트와 병원, 소방서, 우체국, 농협, 새마을금고 등의 금융기관, 대형 철물점, 앞으로 격일제가 아닌 상시 운영될 대중목욕탕 등 도시 못지 않은 좋은 정주환경을 갖추고 있다.
인구 전문가들은 국내 지방의 대다수 읍과 면은 향후 20-30년 안에 인구수가 줄어들어 소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안의 경우에도 현 13개 읍면 중 줄포면과 부안읍, 변산면을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줄포 사람들은 긴 잠에서 깨어나, 저 앞을 내다보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지역들을 흡수해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기 위해 새로운 관광패턴을 개발하고 살기 좋은 정주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바닷가이면서도 짠내가 나지 않는 지리적 특성과 풍부한 농산물과 수산물, 그리고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고 도심 못지않은 상업적,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줄포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할 것이다. 특히 줄포생태공원을 연계한 테마 관광코스 등은 향후 줄포사람들의 먹거리다.
최근 줄포면 사람들의 손으로 줄포 면지(面誌)를 만들면서 지역의 역사와 내일을 정리해보는 데서 출발한 오늘의 움직임은 분명 멋진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믿으며 그 첫 걸음으로 줄포만(茁浦灣)이라는 줄포사람들의 자존을 되찾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