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배움, 그 열정의 오르가슴이여
학위를 취득했다. 휴학한 지 무려 30년 만이다. 결혼하여 이곳 임실에 내려와 살면 전북대학교에 편입시켜준다는 남편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가 휴학하고 살다 보니 어느새 지천명이다. 공부에 미련은 두고 있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뒷바라지하는 팍팍한 살림 속에서 내 생각은 늘 뒷전이었으니 복학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가고 어느새 두 아이는 내 품을 떠났다.
남들은 다시 신혼생활이 찾아왔다며 농을 했지만 막상 둘이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가 공허한 것인지. 제2의 사춘기처럼 가슴 한구석이 휑하고 우울증이 엄습해 오는지. 이럴 때 나를 지탱해준 것이 바로 공부였다. 처음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따볼 요량으로 사이버대학에 관한 정보를 찾던 중에 학점은행제라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학점은행제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및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학점이 누적되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학위취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열린 교육 사회 및 평생학습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나는 그 제도를 이용하여 평생교육원 인터넷 강의를 통해 학점을 취득하고 학점은행을 통해 학점을 관리한 지 1년 6개월 만에, 드디어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이다.
흔히 학무지경(學無止境) 즉,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배울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때는 끝은 없을지언정 공부하는 적정한 시기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억지로 머릿속에 넣으려고 기억의 안테나를 세우고 세워도 도대체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았고 몇 번을 읽고 또 읽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갱년기를 맞으면서 내 머리는 더 녹슨 듯 했다. 그런 머리를 쓰려니 두통이 밀려오고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괜히 시작했다고 후회하며 그만두려고 하다가도, 등록한 수강료가 아까워 그만둘 수 없었고 중간에 또 몇 번 포기할까 소심한 갈등이 있었지만, 그동안 이룬 것들을 버리기 아까워서 버티다 보니 어느새 은행에 예금 쌓이듯 차곡차곡 학점이 쌓였다. 그리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고 덤으로 학위 취득을 위한 학점을 이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학위증이 우편을 통해 배달되었다.
주경야독의 시간이었다. 학위증을 받고 보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퇴근하면 시어머니 저녁부터 챙겨드려야 하고 주민자치위원에서 운영하는 난타, 풍물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 낭송 수업까지 다 소화하고 집에 오면 저녁 아홉 시, 그 시간부터가 내 면학의 시간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세우고 온라인강의를 들으며 코피도 흘려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졸다가 책상에 이마를 찧는 것은 다반사였다.
늘그막에 편하게 살지 왜 사서 고생이냐며 걱정해주던 사람도 있었고 그 나이에 자격증을 따고 학위를 받는다고 어디 써먹기나 하겠냐며 핀잔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배우기를 그친 사람은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늙은 것이요, 항상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은 젊은 것이요,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정신을 늘 젊게 유지하는 것이여’ 하며 헨리 포드를 팔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명진 마을에는 나보다 더 늙은 여고생이 사신다. 예순 살이 훌쩍 넘은 학생은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어릴 때 먹고 살기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밥벌이에 뛰어들었고 그 후 배움에 끈을 놓고 지냈는데 나처럼 자식들 다 분가시키고 무료한 생활의 돌파구를 찾다가 공부를 택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임실군 오수면에는 미래 초·중·고등학교라는 학력 인정 학교가 있다. 그곳은 전교생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지만, 학구열만큼은 어린학생 못지않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대학까지 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 어버이 시절은 어디 그랬던가? 설움, 설움 해도 못 배운 설움만큼 큰 설움이 없다 하신다. 인생 황혼기에 만학도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의 남편은 늘그막에 마누라 뒷바라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대학교까지 보낼 작정이라 하신다. ‘내 마누라지만 참말로 대단하다’ 하시며 자랑도 잊지 않으셨다. 그 여고생을 보며 배움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무엇을 하는데 ‘적당한 나이’라는 사회적 관념을 정해놓고 무엇을 하려고 할 때 그 잣대로 재단하며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않는다. 무엇을 하기에 적당한 나이는 바로 하고 싶은 만큼 동기부여가 될 때 아닐까?
내 친구 기순이는 요즘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며 카톡을 보낼 때마다 간단한 대화는 영문으로 보낸다. 그로인해 나는 그녀에게 답장을 위해 영어 사전을 펼치는 시간이 많아진다. 또, 시 낭송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 한 편 외우는 일이 쉽지 않지만 10분 남짓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한 편 한 편 외우다 보니 어느새 열 편 이상이 내 머릿속을 채웠고 서툴지만 작은 무대에서 낭송도 했다.
이제는 삶에서 무엇으로 고민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아! 배움, 그 열정의 오르가슴이여,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