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을 지나 여름으로 들어서는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마지막 날에 스쳐 간 5월을 돌아본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까지 가정의 달이라고 할만한 날들이 촘촘히 들어 있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가계 지출이 많아 허리가 휘청거릴 만큼 부담되는 달이기도 하다. 거기에 부처님오신날도 있었고 마지막 31일, 바다의 날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1894년 정읍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11일이다. 실패한 혁명이지만, 세계 역사에서 순수 농민이 봉건관료를 몰아내고 민주정치의 바탕을 구현하려 했던 민주 혁명은 동학농민혁명이 최초였다.
그 찬연한 혁명의 울림이 1980년 5월 18일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운동으로 꽃피웠다. 이 땅에 치졸한 기회주의와 배반, 유린, 공포정치의 씨앗을 심은 박정희가 군대를 이끌고 정부를 전복하여 나라를 훔친 날 5.16쿠데타의 상처도 이달에 남아있다.
사랑의 달이면서 부끄러운 상처가 남아있고 자랑스러운 민중의 자각과 적극적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살아 숨 쉬는 위대한 달 5월이 모롱이를 돌아 6월로 넘어가려는 끝자리에 서 있다.
시대를 청산하고 가자
최근 여론조사에 호남사람들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20%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조사가 어떤 지문과 어떤 조사 방법을 이용한 것이든 결과가 비슷하게 나왔다면 관심을 가질만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여태 보수정당이 호남지역에서 20% 지지율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정상적인 조사가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국민의힘 의원 2명이 초대되었다고 해서 여론이 금세 달아오르지는 않는다.
여론조사는 오로지 대상자들의 평소 생각을 알아보는 단답형 조사여야 한다. 얼마 전에 온라인 여론조사 설문을 보고 아연했던 적이 있다. 조사 설문마다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어서 이러저러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앞에 적어놓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고 묻는 식이었다.
그 앞에 깔아놓은 배경이 보수정당 지지로 생각이 기울도록 유도하는, 여론조사라고 할 수 없는 조사였다. 보이스피싱처럼 응답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저절로 유도자의 뜻에 따르도록 꼬이는 ‘리서치 피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보수 언론사 등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움직임은 거절해도 끝없이 공세를 이어갈 만큼 끈질기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처럼 갖가지 방법으로 스스로 정당화해가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민심의 흐름을 유도하느라 끊임없이 노력한다.
해방 공간에서 일본의 꾐에 넘어간 미국의 방해로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해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마침내 그들이 발호하여 40년간 군사독재가 진행되면서 나라 곳곳에 그들의 힘이 뻗쳐 철옹성을 만든 오늘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들의 힘은 각계의 요소에 버티고 있어서 새정부는 개혁 꿈만 꾸다가 흐지부지 정권을 내놓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작은 쥐구멍이 둑을 무너뜨리듯 사소한 바람이 거대한 물결로 변해 해일처럼 덮치는 민심의 순간 변화가 만들어진다. 우리 국민은 금세 달아오르고 금세 식어 잊어버리기에 일제는 우리 국민성을 ‘냄비 근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성적인 듯해도 사소한 바람에 흔들려 회복 불능의 상태로 쏠려 몰아버리는 심성이 있다.
촛불이 태워버린 ‘제멋대로 정치 망령’이 어리숙한 정부의 주택정책 헛발질과 코로나 확산에 피로한 민심을 이용하여 슬금슬금 싹을 틔우고 자라서 지난 보선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기고만장한 그들은 국민을 속여 대통령이 된 자와 탄핵으로 쫓겨난 여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바탕이 취약한 껍데기 정권은 일부 언론과 검찰, 법원의 엇박자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활용하지 못했다. 국민의 지지가 살아 넘칠 때 그들 세력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또 한 번 묵은 시대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5월 정신을 이어가려면
백성들이 일어서서 정부의 잘못을 꾸짖고 일본군을 내몰겠다고 나섰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흐르는 5월이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하고 나라를 탈취하려 하자 대학생과 시민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광주의 그 날도 5월이었다.
불행하게도 농민들의 함성은 일제가 조선을 삼키는데 좋은 빌미가 되었고 광주의 함성은 전두환이 나라를 장악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실패하여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동학난’과 ‘광주 시민폭동’은 역사의 심판에 따라 ‘동학농민혁명’으로,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제 이름표를 달았다.
5월은 푸르름이 짙어가고 아름답기만 한 계절이 아니다. 우리의 오랜 염원인 민주 세상을 열고자 했던 달이고 그것을 위해 숱한 목숨이 무도한 자들의 힘에 희생되었던 거룩한 달이다. 아울러 그러한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부처님의 자비가 세상이 비춘 날도 5월에 있다.
우리 앞에 어떤 세상이 열려야 할지 5월을 돌아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개 꼬리 3년 묵혀도 황모(黃毛) 안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5월을 유린했던 자들과 그 후손, 그 추종 세력이 다시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왜 우리는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는지 금세 달아올라 한 바람에 식는지 곰곰 생각할 때다. 소슬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데 5월처럼 좋은 본보기는 없지 싶다. 우리가 싸워 만든 오늘이 어떤 경로를 거쳐왔는지, 여기까지 오는데 방해했던 자들이 누구인지, 마음을 다잡아 붙들어 매야 할 때다.
양대 정당이 당 대표를 뽑고 대통령 후보를 고르는 큰일들을 치르고 있다. 여기서 국민이 흔들리지 않고 진정 좋은 사람을 찾아 당을 맡기고 나라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 비난과 선동을 일삼는 정치가 아닌 진정한 봉사자를 찾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다.